한·미 환율 협의 이후, 원·달러 환율 ‘새 국면’ 시작.."50원 급락"

 미국이 주요 교역국들과의 관세 협상에 이어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환율 협상’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아시아 주요국 통화가치의 절상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 대만,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원·달러 환율의 하락과 함께 원화 가치 회복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2일 엠피닥터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1387.2원) 대비 5.75원 떨어진 1381.45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초 이후 약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화 가치는 한 주 사이 50원 가까이 급등하며 1420원대에서 1390원대로 빠르게 내려왔다.

 

이 같은 환율 하락세는 미국과 아시아 각국 간 환율 협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속화됐다. 초기에는 중국 위안화가 급등세를 보이며 주목받았고, 이달 초 대만달러화가 급격한 상승을 보이자 시장의 관심이 대만으로 이동했다. 이후 한국과 미국 간 환율 협상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원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어 일본과 미국 재무장관 간의 회담 이후 엔화 강세 현상도 두드러졌다.

 

미국과 일본 재무장관은 양자회담 후 “환율은 시장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며 구체적인 환율 수준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으나, 외환시장은 이미 아시아 주요국 통화 절상을 예상하는 분위기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00 이하로 떨어지며 달러 약세를 시사하는 반면, 원화와 엔화,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달러 강세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사실상 ‘달러 약세’ 정책을 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미국이 통화 절상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물밑 협상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 상승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원화 절상은 한국 경제에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동시에 존재한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개입 부담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원·달러 환율 하락을 견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지난해 말부터 반년가량 환율이 1400원대를 유지하며 외환보유고 감소 등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는 원화 절상이 더 나은 선택지로 평가된다.

 

 

 

반면, 급격한 원화 절상은 수출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수출 경쟁력이 약화돼 기업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메리츠증권 박수연 연구원은 “환율 하락은 수출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올해 경제성장률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환율 협상이 본격화되면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까지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 국내은행 딜러는 “최근 환율 협상 소식과 정치적 안정세로 인해 환율이 1400원대로 다시 오를 가능성은 낮아졌고, 환율 하단도 내려갔다”고 분석했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단기적으로 원화 저평가가 해소될 가능성이 커 올해 환율 하단을 1330~1300원으로 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환율 하락세가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환율이 기대감에 따라 단기간 급락했지만 국내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하지 않은 만큼 일시적 조정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존재한다. 우리은행 박형중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협상으로 단기적으로 환율이 하락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하반기에는 미국의 관세 정책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쳐 달러 강세와 환율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더라도 과거보다 더 높은 수준의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무역환경 개선 기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는 환율이 다시 1350원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결국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환율 협상은 단기적 통화 절상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이나, 미국의 경제 정책 방향과 글로벌 무역 환경 변화에 따라 원화 환율은 변동성이 크고 장기적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는 환율 변동에 따른 수출 기업 영향과 통화 정책 대응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환율 협상의 진전과 더불어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지속적인 외환시장 모니터링과 유연한 정책 대응을 통해 환율 변동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요구된다.